▣ 신라의 성장과 발전
□ 내물마립간(17대 : 356~402)
① 김씨가 독점적으로 왕위를 세습하게 되었다.
② 왕호를 이사금에서 마립간으로 바꾸었다.
③ 광개토 대왕의 도움으로 왜군을 축출하였다. (호우명 그릇 : 광개토대왕에 대한 제기).
*마립간(麻立干)은 수장(首長)을 뜻하는 '간(干)'앞에 '마립'이 붙어 이루어진 칭호이다.
<삼국사기(三國史記)>에 인용된 김대문의 설명에 의하면, '마립'은 신라 말로 말뚝을 뜻하며, 왕과 신하가 위치하는 자리인 '함조'를 일컫는다.
□ 눌지 마립간(19대 : 417~458)
① 백제의 비유왕과 나제 동맹을 체결하였다( 433).
② 고구려 승려 묵호자가 불교를 전래하였다.
③ 부자 상속제가 확립되었다.
*나제동맹 : 삼국시대 서기 433년부터 서기 554년까지 121년 동안 지속된 신라와 백제의 대 고구려 군사 동맹이다.
신라의 '라'와 백제의 '제'를 따와서 붙였으니 '라제동맹'이라고 해야 맞지만 두음법칙에 따라 '라'자가 '나'자가 된다.
일각에서는 백제가 동맹을 주도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제라동맹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.
□ 소지 마립간(21대 : 479~500)
① 우역제 실시 : 경주를 중심으로 사방에 역로를 개설하였다. -지방 통제 강화
② 수도(금성)에 시장이 개설되었다.
③ 백제의 동성왕과 결혼 동맹을 체결하였다(493).
*동성왕 : 493년(동성왕 15년)에는 당시 신라의 군주였던 소지 마립간에게 권유해서 혼인을 청하니 이찬 비지의 딸을 백제로 시집을 보내기도 했고, 494년(동성왕 16년)과 495년(동성왕 17년) 두 해에 걸쳐 백제와 신라를 번갈아 침공해 오는 고구려의 군대를 신라와 연합해 격퇴하는 등 나제동맹을 더욱 공고히 했다.
□ 지증왕(22대 : 500~514)
① 우산국(현재의 울릉도)을 복속시켰다. - 독도도 우리 영토로 편입
② 우경을 시작하고, 수리 사업을 진행하였다. - 농업 생산력 향상
③ 동시전(시장을 관리, 감독하는 기구)을 설치하였다.
④ 국호를 '신라'로 정하고 '왕(王)'의 호칭을 사용하였다(503).
⑤ 순장 금지 : 노동력을 확보하였다.
*동시전(東市典) : 신라시대의 관서로 수도인 경주에 설치된 동시(東市)의 업무를 관장하기 위해 509년(지증왕 10)에 설치되었다.
□ 법흥왕(23대 : 514~540)
① 율령을 반포하였다.
② 백관의 공복을 제정하였다(520).
③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가 공인되었다(527)
④ 병부 및 상대등을 설치하였다.
⑤ 영토 확장 : 김해 지방의 금관가야를 병합하였다.
⑥ '건원'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였다(536).
*이차돈 : 삼국시대 신라의 제23대 법흥왕 때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스스로 순교한 불교인.
*순교 :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행위를 말한다.
□ 진흥왕(24대 : 540~576)
① 정복 사업 : 한강 유역까지 진출하였다(진흥왕 12년, 551).
· 한강 상류 지역 장악 - 단양적성비
· 한강 하류 지역 장악 - 북한산비
· 대가야 정벌을 통한 낙동강 유역 장악 - 창녕비
· 동북으로는 함흥평야까지 진출 - 황초령비, 마운령비
② 남양만에 당항성을 쌓아 직접 중국과 통교하였다.
③ 거칠부가 「국사」를 편찬하였다.
④ 연호 사용 : 개국, 대창, 홍제
⑤ 씨족 사회의 청소년 집단이던 화랑도를 국가적 조직으로 개편하였다.
⑥ 숭불 정책 : 황룡사를 건축하였다.
'한국사이야기' 카테고리의 다른 글
발해의 역사 (0) | 2023.01.19 |
---|---|
통일 신라(신라 중대와 하대)의 특징 (0) | 2023.01.17 |
백제의 성장과 발전 (0) | 2023.01.14 |
고대의 역사 _ 고구려의 성장과 발전 (0) | 2023.01.13 |
여러나라(부여, 고구려,옥저,동예, 삼한)의 성립과 발전 (0) | 2023.01.12 |
댓글